신호등이 있는 3개의 횡단보도와 그렇지 않은 하나의 횡단보도, 전철이 내려다보이는 고가도로와 인내심을 요하는 낮지만 긴 오르막길을 통과해야 구립도서관이 눈에 들어온다. 마땅한 대중교통은 없고 걷기에는 먼 거리여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림에도 단 한 번의 환승만 하면 되는 학교 도서관을 애용했다. 상황이 변한 지금, 오랜만에 구립도서관으로 향한다.

붉은 도서관과 양옆으로 세워진 자전거들, 그 바뀌지 않은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최근에 공사를 했다는데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 기억력이 비상했다면, 장기투숙 중인 자전거까지 발견했겠지만 말이다. 주말임에도 날씨 때문인지 건물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독서는 간단히 말해 불가능하다. 서류를 떼러 간 공공기관처럼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 맘을 아는지 도서관은 늘 다이어트 중이다. 단 한 층에 그 많은 책이 – 아니, 딱 그만큼의 책이 – 있다. 이곳에서는 먼지로 덮인 책이 내게 건네는 요란한 환영도, 사다리로 묘기를 부리는 재미도, 층을 오르내리는 숨바꼭질도 없다.
영미문학을 지나 프랑스, 포르투갈의 800번대 중후반 번호를 좇았다. 세계사에서 그들이 이뤄낸 업적에 비해 매우 초라한 공간만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외국에서 한국 서적의 위상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분명히 부익부 빈익빈은 언어에서 더욱 심화된다.

아쉬움을 한탄하는 찰나, 내 눈에 그 책이 맺혔다.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 때마다 ‘이제는 반납했겠지? 새로 구입하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검색하던 그 책이, 바로 여기,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 이렇게 만날 줄이야. 가깝지만, 자료가 없다고 무시하던 구립도서관에서 만날 줄이야.

삶도 마찬가지 같다. 가까이 있다고, 자주 접한다고, 난 그것의 가치를 깎아내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껏 외면했던 일상이 빚어낸 것이 진짜 나였을 텐데. 허영심으로 치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을까? 책을 잃어버린 2년 6개월의 시간, 그보다 더 길었던 나를 잃어버린 세월 앞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자전거를 타고 한달음에 돌아온 집, 나처럼 나이를 헛먹은 책의 깨끗함이 결국은 눈시울을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