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출한 세 권의 책이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소장도서들의 텃세에 밀려 좋은 자리를 맡진 못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간택되어 한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소장목록을 늘려가며 포만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편을 더 좋아한다. 그 많은 책을 사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용기도,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거니와, 오래된 책에는 새 책에서 찾을 수 없는 연륜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대출의 미학은 그 연륜의 발견에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을 갈망했는지 수택으로 도배된 빛바랜 종이가 펼쳐지면, 자극적인 잉크냄새 대신 언젠가 자리 잡았던 단풍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어서 여백에다 각주처럼 달아놓은 상념들, 같은 쉼을 요구하듯 접힌 페이지가 우리를 맞아준다. 그것들이야말로 독자가 책에게 주는 가장 큰 표창이자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훼손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사라져 버려 안타깝다.

그 발견에서 독특한 것은 책갈피이다. 반납 후에도 책과 운명을 같이 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존재이자, 이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는 우리를 독서에 빠져들게 도와주지만, 자신은 책 속에 녹아들지 않는 중립성이 요구된다.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 읽었어요’, 다시 말해 책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이 전부인데, 우리는 그 신호를 망각하고 책과 함께 반납함으로써 그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해버리곤 한다.

이번에 발견된 ‘고양이와 잎사귀’ 책갈피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렸을 두 고양이와 그 기다림만큼 몸을 한껏 늘린 잎사귀로 이루어진,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음직한 물건이다. 그러나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 한껏 부풀어 올린 형상으로 말미암아 책을 망가트린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그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번에 어디까지 읽었지가 그때로 확장될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책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 한, 어떤 흔적을 남길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누가 여기다 남기고 간 걸까? 실수로 읽어버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의구심이 든다. 유명한 시나 글이 적힌, 책을 사고 나서 딸려 나오는 그 흔한 광고성 책갈피도 아닌 데 말이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나서 다시 한 번 책을 들춰보기만 했어도 충분히 찾았을 텐데…. 왜 여기에다 남겨둔 것일까? 그건 의도였을까? 아니면 실수였을까? 혹시 자신의 독서를 대신 마쳐 줄 누군가를 기다렸던 걸까? 근데 이게 책갈피1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1. 조사결과, i-va design의 책갈피 시리즈 중 ‘꽃과 고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