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로빈스 씨에게

“저는 채식주의자의 길을 걷지 않을 생각입니다. 애당초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제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가죽을 비롯한 다른 제품의 소비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모르시겠지만, 여기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동물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거의 불가능합니다.”라고, 처음에는 글을 쓰려 했습니다.

당신의 책, ‘음식혁명’을 읽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최근에 세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1,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2, 그리고 당신의 책, ‘음식혁명’3입니다. 갑자기 쇠고기와 관련된 이 책들을 읽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지금 한국에서 크게 다뤄지는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한미 FTA와 관련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입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만으로 반대를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이 그러하듯,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동물 보호 단체의 영상이 인간중심으로 해석된 상황입니다. 인간을 동물의 우위에 놓는 순간, 불행하게도 우리는 미국과 한국의 우열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악랄하게 다른 나라에서 강탈할 것입니다. 자유무역이라면서, 왜 제한을 둘까요? 단지 누구만의 이익을 위한 일 아닌가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당신이 한국에 관심을 두고, 강연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습니다. ‘광우병’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를 넘어서 자본주의가 가속화한 ‘지구의 죽음’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책 중에서 ‘육식의 종말’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힘을 쓰지도 못하는 축산협회가 얼마나 강하면, 쇠고기 창구를 우선 개방하려고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원시수렵단계에서 현대식 축산공장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소의 특별한 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저술하고 있었습니다. 최고계급만이 향유하던 쇠고기가 정계 로비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충격적인 사실들 – 소를 방목하려고 무참히 벌어진 인디언과 버펄로의 살육, 쇠고기 확보를 위한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 소의 곡물 소비로 늘어난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 – 에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어떤 역사책과 뉴스에서도 접하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없었던 거겠죠.

그다음에 읽은 책은 ‘죽음의 향연’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의 의문 모를 죽음(쿠루병)과 광우병의 연관성을 유추해내고 있었습니다. 식인 풍습을 통해 인간에게 발생한 쿠루병을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한 자연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무의식중에 윤리라는 이름으로 깨우친 건 같습니다. 신이 되겠다는 야심에 찬 유전공학이 빚어낸 수많은 병을 바라보면서도, 왜 우리는 자연의 경고를 계속 무시할까요? 두렵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매로 판정받았을까요? 수십 년에 가까운 잠복 기간을 어떻게 버텨내야 하나요?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바로 당신의 책, ‘음식혁명’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저서는 읽지 않았지만, 다른 책을 통해 많은 내용을 섭렵했기에 육류 섭취는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지나친 소비만 아니라면, 소를 죽이지는 않으므로, 유제품까지는 괜찮겠지라며 안일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기에 당신은 제가 반박하지도 못할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며, 우유가 우리에게 건강보다는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자료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어미 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제가 어떻게 우유를 먹을 수 있나요? 소는 인간을 위해, 인간은 돈을 위해 모유 수유를 포기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겠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권리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나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윤이든 비만이든 간에, 전 ‘축적’을 싫어합니다. 축적이란, 균형이 무너진 상태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결과입니다. (순서상으로는 과식이 먼저겠지만,) 분명히 과식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과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이 찌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천천히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육류 섭취를 하면서 과식을 피한다는 것이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한다는 것처럼 헛된 망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쉬우면서 영향력이 큰 환경운동이 채식이라기에 속는 셈 치고 시작했습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동물의 권리가 일정 수준 회복되면, 다시 고기를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육식으로 돌아설 생각이 없습니다. 불과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몸이 한결 가뿐해졌습니다. 운동하며 마시던 스포츠음료의 소비도 현격히 줄었습니다. 이따금 분출하던 공격성도 무분별한 욕심도 사라졌습니다. 채식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위선을 떨쳐 버리고, 동물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주신 점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광고와 뉴스가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속았습니다. 거짓말이 공익광고에까지 스며들어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앞으로 사람을 만나면, 당신의 책을 권하겠습니다. 채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육류 소비는 줄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건강, 기아문제, 온난화, 환경오염 등, 많은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미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쉬운 방법이 채식 위주의 식단임을 알게 된다면, 곧 행동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과학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우리는 이미 사랑이란 이름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2008.05.28

  1. 육식의 종말 – 책 정보 (알라딘) []
  2. 죽음의 향연 – 책 정보 (알라딘) []
  3. 음식혁명 – 책 정보 (알라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