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려 한 탓이었습니다. 결국, 제게 돌아온 것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버린 하루, 근사한 식사에 맞먹는 영수증, 그리고 색색으로 단장한 이틀 치의 약들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병원을 참 좋아했습니다. 문을 들어설 때의 그 알싸한 알코올 향은 제게 청량제가 되어주었고, 병원마크로 물들인 그 옷은 명품처럼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결석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시간에 아픔과 씨름하다 약을 먹고 잠들어 있었겠지만요.

병원이 싫어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할머니 장례식에서 맡은 병원 냄새의 근원이 죽음임을 해독한 때라고 해야 할까요? 그 냄새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이후로 병원을 자주 찾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면역력이 강해진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이제는 죽음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나마 병상에 누워 떨어지는 링거액 방울을 세면서 잠을 청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 아픔은 둘째치고 ‘긴 잠을 자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도 되지 않는 걱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착하기 전에는 ‘혹시 심각한 병에 걸린 건 아닐까?’라는 비현실적인 비운의 주인공 같은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어젯밤의 아픔이 TV 속 드라마처럼 아무렇지 않아 오히려 미안할 정도입니다. ‘적당히’, 성공 앞에 어울리지 않는 이 말이 우리 몸에는 더욱 어울린다는 사실을, 저는 빈번히 잊고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