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책 한 권을 들고 공원을 찾았습니다. 요즘 들어 일주일에 한 번은 야외에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닫힌 건물에서 읽을 때는 몰랐었는데, 열린 공간에서 읽는 책은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태양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야외에서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제겐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꼭 책만 읽는 건 아닙니다. 바람이 전해주는 음악도 듣고, 곤충 친구들과 식사도 합니다. 그래도 심심하면 아무에게나 사진기를 들이대곤 합니다.

사실, 제가 사는 동네 주변에는 가볍게 책 읽을 공간이 없습니다. 집을 나오면 타닥타닥 건물 사이를 메운 건 주차장이요, 남은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얼마 전, 인근 아파트에서 괜찮은 공간을 찾았지만, 애써 담으로 둘러싼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쉼터도 언제부턴가 개방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우리는 이렇게 경계하고 의심할까요? 결국, 30분 거리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오늘도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이름 모를 나무 아래 벤치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조금 지나지 않아, 풍선을 손에 쥔 두 꼬마와 어머니들이 옆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머니들은 담소를 나누고, 두 꼬마 악동은 나뭇가지로 칼싸움하다가 이제는 비둘기를 쫓아 여기저기를 누볐습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한 꼬마가 제게 인사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당황했지만, 가볍게 묵례와 미소로 답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뛰놀기 시작했고, 저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로 행복해지는 저를 보면서 삶이란 결국, ‘마음을 여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풍파에 닫힌 마음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마음을 열면 좋겠지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마음을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그 시간이 아까워 포기할 만큼 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세차게 분 바람에 벤치에 놓인 풍선이 제게 날아왔습니다. 풍선을 주워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건네주자 “감사합니다.”란 말이 돌아왔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임을 알았기에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순수하게 다가오는 아이와 계기로만 관계를 시작하는 어른들의 수비적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미칠 듯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남은 건, 그 희망으로 인도해 줄 어른들의 몫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