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Music

이번 MBC 라디오 개편을 맞아서 뮤직스트리트 3부 ‘월드뮤직’1이 끝났다. 늦은 시간이라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1년 넘게 즐겨듣던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은 느닷없는 해고만큼 불쾌하기 그지없다. 무슨 이유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후속프로그램을 보아하니, ‘심야 4시 프로그램에까지 청취율의 잣대를 들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직은 공영방송인 MBC가 단지 인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월드뮤직을 끝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 ‘미국에 하나뿐인 한국음악학과를 살리자!’2는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미국에서 약자인 우리 문제에 귀 기울여달라고 소리를 높이면서, 한국에서 약자인 소수의 목소리를 우리는 늘 무시해왔다.

월드뮤직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지는 6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월드뮤직의 매력을 말하자면, 세계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 제삼자의 입이 아닌 –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음에 있다. 거기에는 독재정권을 향한 투쟁과 소수민족의 독립을 향한 열망 등이 담겨 있다. 월드뮤직의 진정한 가치는 세계화 시대에 음악을 넘어서 국가, 민족, 인종 간의 이해를 쉽게 도와주는 데 있다. 내게도 빅토르 하라3 의 말처럼 ‘예술가는 그 뛰어난 소통능력 때문에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 대운하 찬가를 부르며 정치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던 숭고함을 지닌 가요가 있었다. 피지배자의 위치에 있었고, 비슷한 민주화 과정을 거쳤기에 서양인들보다도 소수의 목소리를 우리는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Free Tibet

쿠베르탱의 말처럼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 한다면, 난 그들을 위해 박수칠 것이다. 그들이 금메달을 따온 것보다 더 열심히 박수칠 것이다. 누군가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비난한다면, 나는 그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국가란,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얽혀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앞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계약집단이다. 맹목적인 애국심을 버리고, 진실을 바라보는 일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선행시 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티베트의 인권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다. 티베트 독립을 그저 관심거리로만 여기지 말고, 작은 행동이라도 취해야 한다. 냉소와 무관심은 기존의 불합리한 체제만 더욱 공고히 만들 뿐이다. 우리도 ‘대한민국 만세’란 외침이 세계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했던 적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과거를 잊었다. 일본 강점기도, 민주화 항쟁도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저번 토요일은 식목일이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반복 학습을 하더라도 잊는 것은 금방이다. 우리는 공휴일처럼 직접적인 이익으로 다가오는 날만을 기억한다. 한글날도 국경일로 지위가 격상하자마자 공휴일에서 해제되며 우리의 뇌리에서 희미해졌다. 더불어 올해부터 검은 날이 된 제헌절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는 5대 국경일4 이라는 문제로 확실히 각인될지도 모르겠다. 주5일제 시행에 맞춰 사라진 공휴일들은 환경, 한글, 법 등의 현 위치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경제로 귀결된다. 빨갛던 기념일들은 그리움으로만 남다가 곧 사라지겠지만, 지구와 우리에게 켜진 적색등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선거

정치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뭐 먹지?”처럼 사람이 만나면 당연시되는 가까운 문제들이다. 시킨 음식 맛없다고 투정부리는 일도 자기 의견을 내세운 사람에게만 주어진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다. 그건 우리가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워 투표를 통해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냉소적으로 바라만 본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이나 아픔을 한탄하는 것은 사치다. 당연히 뽑을 사람이 없다며,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불평할 자격도 없다. 백지투표로써 엄연하게 주어진 유일한 목소리를 낼 기회를 버린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3시간 후면, 투표가 시작된다.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에 앞서 투표율이 얼마나 될지 더 궁금하다. 투표율은 아직 정치가 외면받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희망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사람의 당선은 객관적 사실로써 돌려놓을 수 있지만, 냉소적인 시선의 사람들을 다시 투표장으로 돌리기는 너무나 어렵다. 진정으로 애국심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를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닌, 투표로 보여줘야 할 일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다. 돈으로 따지더라도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면 할수록 이득을 보는 사람은 당신이 아닐 확률이 높기에 더욱 그렇다.

다수결이 얼마나 불합리한 방법인지 우리 모두다 한 번쯤 겪어봤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 사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을 향한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소수의 목소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내자. 불평은 그다음 일이다.

  1. 뮤직스트리트 3부 월드뮤직 홈페이지 []
  2. 미국에 하나뿐인 한국음악학과를 살리자! – 한겨레 []
  3. 빅토르 하라(Victor Jara) : 칠레의 음악가.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 본질 자체로부터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예술가는 게릴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
  4.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