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 기록실로의 여행
2008.01.04폴 오스터1
영화 ‘스모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폴 오스터, 이제는 작품 대부분을 섭렵할 정도로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엮어 이야기 속에 주제를 풀어내는 그의 능력은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최신작인 기록실로의 여행2은 저자가 투영된 ‘미스터 블랭크’라는 인물을 통해 ‘실존’이란 문제 속으로 우리를 교묘하게 끌어들인다. 짧은 분량임에도 독특한 구성으로 강한 흡입력을 구축한 이 소설은 독서가 끝난 후에도 우리를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전작을 읽은 독자에게는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인물’을 찾는 재미도 있지만, 처음 접한다면 최소한 그의 대표작 ‘뉴욕 3부작’은 읽고 보길 권한다.
기록실로의 여행3
“여기가 어디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이 홀로 방에 있다. 그는 수북한 원고와 몇 장의 사진들만 있는 방에 사실상 감금되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통해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욱 혼란스러진다. …”
소설이란, 기록실로의 여행에 나오는 ‘Mr. Blank’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암시하듯 ‘무’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 작가는 자신을 구속하고 감시하며 창작의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기억의 조각을 꿰매는 그 끝없고 혼란스런 작업의 고통을 우리는 ‘안다’거나 ‘이해한다’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그 아픔의 산물인 작품을 통해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그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작가의 머릿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에게는 낯익은 풍경들이 자화상처럼 펼쳐지지만, 독자는 끝없는 시공간 속에 혼돈으로만 이루어진 그곳이 기존의 규칙에 크게 어긋났다는 강박관념에 불편하다. 그렇다고 아픔을 체험하게 만든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책을 덮음으로써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겠지만, 우리에게는 ‘여행’인 그곳이 작가에게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점점 커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작가가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다.
‘Never Ending Story’, 작가가 심연 속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이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길은 끊임없는 창작이다. 다시 말해, 불행하게도,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작가의 생은 끝난다. 퇴직이란 칭호가 존재하지 않기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운명이다.
그는 작가의 심오한 고뇌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 글쓰기에서 인생으로까지 ‘실존’의 문제를 내비치며 같이 고민하게 한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 작가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기록과 기억의 전이를 통해 영생을 얻은 ‘소설 속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같이 보기
엑스파일 6×18 milagro4 : 위 책과 같이 보면 더욱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소설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작가가 그의 소설 속에 스컬리를 등장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책과 비교해서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 폴 오스터 – 작가 프로필 (알라딘) [↩]
- 이번 작품은 조금 아쉽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짜임새가 엉성하다. [↩]
- 기록실로의 여행 – 책 정보 (알라딘) [↩]
- 엑스파일 6×18 milagro 에피소드 정보. zoo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