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 눈뜬 자들의 도시
2007.12.20주제 사라마구1
책을 가까이하지 않은 6개월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4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에 반 수는 교양이나 개론 서적이고 소설은 채 10권밖에 되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 권을 독파할 정도로 톡 쏘고 지나가 버린 아멜리 노통브는 한여름밤의 꿈으로 사라졌고, 늦가을에 찾아온 러시아 소설은 난해한 이름과 가독성을 저해하는 디자인 때문에 단풍도 지기 전에 책장으로 돌아갔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작가가 주제 사라마구였다. 판타지 리얼리즘 아래 폴 오스터의 연장선에서 그를 찾았던 것 같다.
TV에서 이 주의 책으로 선정되어서 읽은 ‘눈뜬 자들의 도시’로 인해, 내게는 그가 올해의 작가로 기억되었다. 내가 접한 그의 작품은 ‘도플갱어’, ‘모든 이름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이렇게 네 권이다. 여기서 한 권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으므로 사실상 세 권이라 말할 수 있겠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올해는 대출하고도 읽지 못한 책이 많았다. 내년에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마저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눈뜬 자들의 도시2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책을 읽는 편은 매우 흥미롭다.3 노벨상 수상자라는 정보만 가지고 접한 그때와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라는 작가의 성향을 알고 난 지금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관해서 알게 되었을 때, 또 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이 잊히지 않는 것은 2007년 대선을 비롯한 지금의 우리 현실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 그의 소설을 웃으며 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념은 사라지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흑색선전으로만 도배된 우리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사실적이다. 그래서 더욱 비참하다.
더욱 절망적인 건… 그의 소설에서 언제나 희망을 부르짖던,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개, 콘스탄틴의 죽음이다. 개가 짖기를 멈춘 그 순간, 개의 소명은 다 한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까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며 짖기를 강요했지만,4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파급력은 단순 흥미 이상이 아니었고, 책과 함께 우리들의 목소리도 닫혀 버렸다.
유권자의 40~50%가 기권한다면, 이런 일은 이제 어디서나 거의 진부한 일이 되긴 했는데, 정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반성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인 것을 불변의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위선이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무관심이나 공모도 있습니다. – 주제 사라마구
대통령에게
나는 소망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우리를 경시하고 기만했을지라도 – 과거 행적이 어디 가겠느냐만은 –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기를…. 그리고 기억하기 바란다. 고맙다는 말은 지금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임기 마지막 우리가 해야 할 말임을….
p.s.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모두가 사랑한다면, 국가란 사실 필요치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정 눈뜬 자는 여성이다.5
- 주제 사라마구 – 작가 프로필 (알라딘) [↩]
- 눈뜬 자들의 도시 – 책 정보 (알라딘) [↩]
- 그게 처음에만 가능한 것이라 아쉽다. [↩]
- 대부분의 리뷰는 마지막 부분에 대한 해석을 작가가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말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내내 불편했던 여성에 대한 편견이기도 하다. [↩]